안녕하세요. 오늘 포스팅에서는 이순신 백의종군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백의종군은 기존 지휘관 급 군인을 일반 병사로 강등시켜서 군에 복무 시키는 조선시대 형벌로 군인에게 있어서 상당히 모욕적인 형벌입니다만 이순신 장군은 2번이나 백의종군한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1. 첫번째 백의종군
이순신 장군은 생에에서 두 번의 백의종군을 합니다. 첫 번째는 부친의 3년상을 치른 군대로 복귀시켰는데 이때의 관직이 조산보 만호였습니다. 두만강 지역에는 토사가 쌓여 형성된 녹둔도라는 섬이 있습니다. 이곳의 땅이 비옥하여 군인들의 군량미를 경작하는 땅으로 이용했는데 이 둔전을 경작하고 관리하는 사람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었습니다. 둔전은 군대의 식량창고이자 보급창고인데 지킬 병력이 너무 모자랐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상관인 병마절도사 이일에게 수차례 병력 충원을 요청했지만, 계속 거절당하고 결국 이순신 장군의 예상대로 여진족이 수확철에 쳐들어와 둔전의 곡식을 모도리 약탈해 가버립니다. 이순신 장군은 병력을 끌고 쳐들어가서 빼앗긴 백성과 부하를 구해오게 됩니다. 이것이 녹둔도 전투이고 이순신 장군의 첫 역사 기록입니다.
하지만 병마절도사 이일이 자신의 착오를 무마하고자 이순신 장군을 수감시킨 후 형벌을 가해 죽이려 했다고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조선 조정에서는 이순신 장군에게 식량을 빼앗긴 것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백의종군하게 합니다. 선조 수정실록에는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한 이후 여진족 추장을 유인하여 참사시키고 상찬을 받았지만 북병사 김응서의 시기를 받아 모함으로 상이 취소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 임진왜란 시기 해상에서의 활약을 주목하는데 상대적으로 임진왜란 이전의 북방 활동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2. 2번째 백의종군
정유재란 당시 선조의 출전 명령을 들은 이순신 장군은 바닷길이 험난하고 왜적이 필시 복병을 설치하고 기다릴 것이다, 전함을 많이 출동하면 적이 알게 될 것이고, 적게 출동하면 도리어 습격을 받을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출전을 거행하지 않았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왜장 가토 기요마사의 이동 경로와 일시에 관한 거짓된 정보를 간첩 요시라가 경상우병사 김응서를 통해 선조에게 제공하고 선조가 거기에 속아 이순신 장군에게 출동 명령을 내렸는데 이순신 장군이 왕명에 불응한 것이 백의종군의 주된 원인입니다.
이 유인책에 선조가 말려들어 수군을 부산포로 출동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명령을 따르지 않은 장수인 이순신은 파직당하고 그후 명령을 따른 장수 원균은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를 했습니다.
3. 이순신의 파직원인과 원균 모함설
아직도 이순신의 출동거부로 알고있는 사람이 있는데요. 선조의 명령을 받은 당시 이순신은 전라좌수영에 공무 차 갔다가 풍량에 갖혀 빠져나오지 못해 출동할 시간을 못맞췄다가 판옥선 69척정도 이끌고 추가로 있을 상륙부대에 압박을 주기위해 부산포에 가서 대포를 쏘면서 일본군을 어느 정도 공격하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사편수회에서 발간한 조선사에서 충무공의 파직 원인을 원균의 모함으로 조작했습니다. 임진왜란 당대와 후대의 모든 기록에는 파직 원인이 간첩 요시라의 계략인 것으로 서술되어 있는데,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에서부터 원균의 모함으로 조작 및 이미지를 고착시켰습니다. 조선사편수회는 이완용이 고문으로 선임되어 있는 조선총독부 소속기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