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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용의 출현 실제 역사인 이순신 한산도 대첩에 대해 알아보자

쌍둥할매 2024. 1. 1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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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포스팅에서는 한산 용의 출현 실제 역사인 이순신 한산도 대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그럼 결론부터 보고 가실까요?

 

 

일본 수군 73 척을 상대로 55 척의 함대만을 가지고 상대해야 했던 이순신. 그는 전라도의 위협을 덜기 위해서 적수군을 완전히 쳐부수는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했습니다. 때문에 이순신은 가장 적을 효과적으로 쳐부을 수 있는 학익진 전법을 쓰기로 하고 견내량에 정박해 있던 일본 수군을 유인 넓은 한산도 앞바다까지 추격하게끔 만들죠 일본 수군은 신나서 쫓아오고 있다가 한산도 앞바다에 이르자 갑자기 조선 수군의 행동에 당황하는데 넓은 바다로 나오니까 갑자기 조선 함대는 서서히 속도를 줄이다 돌연 멈춰 서더니, 선체를 갑자기 선을 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배 옆면이 일본 함대를 마주 보도록 만들었죠. 배를 급선회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고 아까 무질서하게 도망치는 것 같던 조선 함대는 어느 순간 학의 날개 형상을 펼치면서 서로 간격도 칼같이 유지한 채로 진을 형성했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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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아니 속도를 줄이더니, 갑자기 멈춰서 선체를 회전하는 거 그게 가능한 것이냐 일본군은 난생 이걸 처음 봤던 게 일본 배는 선체 밑부분이 V자이기 때문에 속도는 빠르지만 회전 반경이 커서 제자리에서 그렇게 유연하게 회전한 그러나 판옥선은 배 밑부분이 유 자 모양으로 완만했기 때문에 제자리에서 능수능란하게 회전할 수 있었으며 판옥선은 또 좋은 게 노 젓는 시스템도 유연해서 노를 밀고 당기는 방향도 다르게 할 수 있고 노마다 추진력도 다르게 할 수 있어서 함선을 아주 신속하게 회전시킬 수 있었죠. 이렇게 판옥선이라는 패는 엄청난 이점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아니 어떻게 이렇게 무질서하게 도망치다가 갑자기 칼군물을 추는 것마냥 간격도 철저히 유지하면서 선체까지 회전할 수 있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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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이순신이 그만큼 주도면밀하게 수군을 훈련시켰던 것이 컸죠. 이런 이유로 말미암아 일본군은 당황했지만, 이미 그들은 정신을 차려보니까, 학의 날개 안에 감싸져 있었습니다. 이에 이순신은 일제히 발포 명령을 내리죠 이에 조선 수군은 마구 화포를 발사했고 일본 수군은 속수무책으로 얻어맞았죠 큰 건 구경이 13 센티미터나 되는 조선의 화포가 일본 함선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와키자카로서는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진 거니까 그는 엄청나게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와키자카는 계속 돌격을 선택하죠.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저 독한 것들 하지만 괜찮다 이번 한 번만 견뎌내고 계속 돌진해 그렇게 어쨌든 맞으면서 적한테 달아붙으면 백병전을 벌일 수 있으니 우리는 한 점 하나만 깨면 된다. 어차피 조선군은 또 포장전하는 시간이 걸리니까 그렇게 계속 증가 기억하는 일본군 그런데 갑자기 조선군은 또 한 번의 어처구니없는 일을 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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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옥선이 일제히 또 반대로 선회하더니, 이번엔 대포가 미리 장전된 배의 반대편 면을 일본군에게 들이댄 것이죠. 그러면 장전할 필요 없이 곧바로 포를 사격할 수 있었고, 또다시 함포 사격이 시작됩니다. 일본군 배에는 또 구멍이 나고 피해는 삽시간의 두 배로 증폭되었죠. 와키자카는 또 매우 당황했을 것입니다. 이건 듣도 보도 못한 전술이었죠. 아니 선취를 돌리는 건 그렇다 쳐도 어떻게 그걸 한 단계 더 활용해서 반대편 화포를 쏠 생각을 하냐는 것이었죠. 그만큼 이것은 매우 획기적인 전략이었습니다. 그런데 참고로 역사 기록에는 이렇게 배를 또 돌렸냐 에 대해서는 정확한 서술은 없습니다. 다만 후대의 역사가들이 추측하는 것인데 이순신 함대 훈련도를 생각해보면 학익진까지 펼쳤는데 이렇게 배를 한 번 더 돌리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까. 이렇게 하는 것이 큰 무리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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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연속된 함포 사격으로 일본군에게는 피해가 누적되었지만 그럼에도 와키자카는 계속 돌격하기로 결정하죠. 이미 일본군 함테는 가속도가 붙었고 후퇴는 불가능했죠. 그래도 일본군은 꾸역꾸역 어떻게든 한 부분만 깨트리면 승사는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전진 이제는 조선 함대가 일본군의 조총 사거리 안에 들 때까지 접근에는 성공했죠. 그런데 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갑자기 조선 함대 사이에서 거북선이 나타나 길을 막아선 거예요. 진짜 조선 태종 때 처음 우리나라 기록에 등장했다가 이순신이 임진왜란을 위해 급하게 제작한 이 거북선은 당시 조선의 총 다섯 척이 존재했는데 한산대첩 때는 두 척이 빠른 속도로 튀어나와 일본군의 앞길을 가로막았죠 이순신은 이미 상황이 이렇게 될 거라는 걸 모두 예측하고 정확한 타이밍에 거북선을 내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이 거북선의 투입은 정확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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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일본군은 학익진 뚫으려고 쐐기 대형을 갖추어 한 점을 향해서 진격해 오고 있었는데, 이 길이 막혀버리니까 이 진격이 불가능한 것이죠. 거북선은 딱 보시면, 아시겠지만, 돌격선으로 딱 절묘한 타이밍에 투입되어 활약하는 소수 정해 함선이었는데. 길을 막는 데도 매우 유용한 게 육중하기도 하고, 방어력도 좋아서 아주 틀어막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일본군 함선들은 갑자기 엉겨 붙어서 서로 충돌하기 시작했고, 그렇다고 거북선을 상대하자니 거북선이었습니다. 북선은 화포를 사방에서 쏘아댔을 뿐더러, 일본군이 가진 건 조총과 백병전뿐인데 조총은 거북선에 별 타격을 주지 못하고 백병전으로 거북선에 올라타자니 거북선 위에는 각종 꼬챙이와 칼이 박혀 있어서 올라가면 고슴도치가 되버립니다. 와중에 조선 판옥선들은 또 화포를 펑펑 쏴댔죠 이렇게 되니 일본군에게 남은 것은 절망하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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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모든 자 전략은 파괴되었고 일부군들는 포위돼서 이제 섬멸 단계의 진입했던 것이죠. 삽시간에 수십 척의 함선이 격파되고 일본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모든 방법이 사라진 와키자카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죠. 이것이 바로 55 척의 조선술 수군이 73 척의 일부 일본군 함대를 격파한 한산 대첩, 한산도 대첩입니다. 여기서 조선 수군은 일본 함선 59 척을 궤멸시켰고 특히 일본군의 대장선, 즉 가장 큰 함선인 아다케는 이때 총 36 척이 있었 그중 35 척을 파괴했습니다. 와키자카가 탄 한 척만이 전장을 빠져나갔습니다. 손실된 일본군은 9000명에 달했죠. 일본 수군은 가까스로 열네 척의 배만 추스려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와키자카도 간신히 빠져나가서 섬으로 도망쳤는데 거기가 하필 무인 인도였던 바람에 열흘 동안 미역으로 연명하다가 뗏목을 타고 겨우 탈출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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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시즈가타케의 칠본창이었던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그렇게 매우 치욕스러운 패전을 겪었죠. 참고로 와키자카는 나중에 이를 갈고 또 한 번 이순신과 맞붙지만 그건 명량해전입니다. 그때 또 이순신에게 만나서 깨지게 되죠. 그렇게 한산도 대첩은 완벽한 승리로 끝났습니다. 적도 만반의 준비를 다 했었는데도 이순신은 오히려 적을 역이용해서 유리한 곳으로 끌어내어 괴멸시켰죠 그리고 한산대첩이 끝나고 이순신은 또 승자만이 할 수 있던 걸 했던 게 안전한 위치인데다 승리 기념할 수 있는 견내량으로 가서 일본군이 아직도 밥하던 흔적이 남아있는 그곳에 고스란히 진을 치고 하루를 보냈죠 이로써 아군의 사기는 충천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한산대첩이 끝났어도 또 다음에 거의 이틀 간격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사건이 남아있기도 했습니다. 바로 안골포 해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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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놀라운 전과가 아닐 수 없죠 이렇게 완전히 전라도 길목 부근의 일본 수군을 괴멸시킴으로써 전라도로 쳐들어오는 일본 수군은 이순신의 완전히 날개가 꺾이게 되었고 조선 수군은 단번에 남해안의 재해권을 장악하게 되었죠. 그렇다면 이 한산대첩으로 인해 임진왜란 전체전황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일단 이 전투로 인해서 일본군은 계획이 그냥 아예 틀어집니다. 일단 일본 일본군의 전라도 점령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는데 그러니까 당연히 일본군이 직격탄을 맞았던 게 당시 일본군은 선조가 있는 의주까지 불과 3일 거리에 있는 평양까지 진군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일본군이 전라도를 차지하고 그곳에 재해권을 장악한다면, 이후에 10만 명이 일본 원군이 전라도 앞바다를 통해 평양으로 공급될 계획이었죠. 그렇게 합세해서 진군을 한다면, 선조는 며칠 내로 사로 잡힐 수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일본군의 전략인 바다와 육지를 모두 활용하는 수륙 병진 정책의 골자인데 이순신이 승리를 거두면서 계획 자체가 박살이 나버렸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수립한 조선을 육군과 수군 두 방향으로 유린한 계획이 아예 무용지물이 된 것이죠. 따라서 일본의 수륙 병진 속전속결 전략은 거기서 끝장나게 되었고 이제 전쟁은 180도 바뀌어서 조선이 힘을 갖고 한 한쪽 팔이 잘린 일본에게 반격을 가하는 국면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게다가 혼비백산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군과의 정면대결을 피하라는 해전 금지령까지 내리면서 일본은 조선 수군에 대한 열세를 뼈아프게 인정해야만 했죠. 이처럼 한산대첩은 임진왜란의 일본군의 기세를 완전히 꺾고 조선군 반격의 발판을 마련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투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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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활약한 이순신 장군은 이후에도 명령 동양해전 노량해전 등 조선의 운명이 걸린 전투 때마다 눈부신 대활약을 해 주었으며 이는 한민족을 일본인으로부터 구한 성웅 이순신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할 수 수 있겠습니다. 이때 만 1조선이 점령되었다면 당시 매우 잔혹했던 일본군의 행동을 생각해 봤을 때 한민족에게는 그야말로 참극이 닥쳤을 것이며 오늘날의 지도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었던 것이죠. 그걸 막아준 이순신 장군과 일본군과 결사적으로 맞서 싸워서 끝내 승리를 쟁취한 조선군의 용감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마무리 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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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지금까지 한산 용의 출현과 이순신 한산도 대첩에 관해서 같이 공부해 봤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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